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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양희은 "아침이슬, 더이상 내 노래 아냐…아껴주고 불러주는 대중이 주인"

오신혜 기자
오신혜 기자
입력 : 
2016-04-17 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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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5주년 맞은 국민가수 양희은
애잔한 선율의 신곡 `4월` 발표…후배들과 공동작업
"미친 듯이 소비되곤 금방 버려지는 K팝 문화 아쉬워"
45주년 콘서트 준비 "원없이 노래한 인생 후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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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 텀블러(휴대용 컵)를 들고 다녀요. 그전엔 안 깨지는 소재로 된 유리컵을 갖고 다니며 커피를 마셨죠. 중학교 때 엄마가 사준 레이스 손수건도 아직 써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뭐든 일회용을 좋아해요. 매일 쓰고 버리길 반복하곤 다시는 찾질 않죠. 음악도 마찬가지인 듯해요. 아쉬운 마음이죠." 사람마다 제각기 손금이 있듯, 노래도 저마다 나름의 생명선을 갖는다. 어떤 노래는 세상에 태어나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소멸되는 반면 어떤 노래는 40~50년 넘도록 사람들 기억 깊숙이 박혀 좀처럼 잊히지 않고 생존한다. 가수 양희은(65)의 노래는 후자다. 삶에 대한 진솔한 통찰을 담은 가사와 시릴 만큼 서정적인 멜로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청아한 목소리가 한데 버무린 그의 음악은 수십 년 세월을 관통해 깊은 울림을 준다.

올해는 양희은이 '아침이슬'로 데뷔한 지 꼭 45주년이 되는 해다. 1971년 '아침이슬'로 세상에 처음 목소리를 알린 이래 '상록수' '한계령'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때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젊은이들의 파릇한 열망을 대변하는 주옥같은 노래를 수없이 선보여 왔다. 최근 2년간 '뜻밖의 만남'이란 이름으로 윤종신·이적·이상순·강승원 등 후배 가수들과 왕성한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다. 2주 전 이번 프로젝트의 여섯 번째 곡을 발표한 후 "딱 맛있게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를 지난 14일 서울 연남동의 한 고즈넉한 커피 바에서 만났다.

"나와 20년 넘게 일해 온 음악가 친구들이 젊은 후배들과 호흡을 맞춰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에 머물게 된다며…. 그래서 시작했어요. 평소 음악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이들과 일일이 만나고 가사를 새로 썼죠."

후배 가수 김규리와 함께 부른 곡 '엄마가 딸에게'는 발표된 지 1년이 다 된 지금도 길거리 상점에서 들릴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사랑하면서도 종종 서로를 밀쳐내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모녀의 애틋한 사이를 그렸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고 이들은 모두 엄마 아니면 딸이잖아요. 저도 우리 엄마를 극진히 모시면서도 떽떽거리며 말로 상처도 많이 줬어요. 딸의 목소리를 담은 2절 가사는 모두 제 경험으로 썼죠."

가장 최근에 발표한 곡의 제목은 '4월'. 김광석의 명곡 '서른 즈음에' 작곡가로 잘 알려진 학교 후배(서강대) 강승원이 작사·작곡했다. "다 보냈다 생각했는데/ 잊은 줄 알았었는데(…)모자란다 니가/ 내 몸이 녹아내린다"로 이어지는 가사와 얹힌 멜로디가 몹시 구슬프다. 하릴없이 2년 전 진도 앞바다의 비극이 떠오른다. "4월을 얘기할 때 그 기억을 떨쳐낼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이 보고 듣는 순간 알 수 있는 것은 굳이 말로 구구절절 풀지 않아도 되죠."

요즘 노래도 좋지만 가수 양희은의 지난 반세기를 되짚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아침이슬'이다. 시위 현장에서 울려퍼지며 1975년 독재정권이 금지곡으로 지정하기도 했던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 듣는 이의 가슴에 전율을 준다. "이 노래를 처음 불렀을 때 난 18세, 곡의 무게를 알기엔 너무 어렸죠. 내가 내 식대로 부른 노래와 시위 현장에서 거대하게 울려퍼지는 노래는 명백히 다른 곡이었어요. 노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이를 듣고 되받아 불러주는 사람들이란 걸 그때 느꼈어요."

세대를 초월해 영구히 생명력을 갖는, 이를테면 '아침이슬' 같은 노래가 왜 요즘은 자취를 감췄을까. "듣는 이들에게 드넓은 공명을 일으키는 노래는 가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래가게 마련이죠. 그런데 요즘 K팝 중 10년 넘도록 쨍쨍하게 불리는 곡이 무엇이 있을까요? 요새는 미친 듯 수백 번 반복해서 듣고 버린 뒤 다시는 그 노래를 찾지 않아요. 감상보다 '소비'가 대세가 된 탓이 아닐까요."

45년간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을 했다. 그중 1994년 '양희은' 이름 석 자를 처음 걸고 한 대학로 소극장 공연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고 했다. "그날 공연 시작 후 도착해 문을 두드리던 여자가 기억이 나요. 제 노래를 듣겠다고 먼 지방에서 아이를 둘러 업고 왔더군요. 결국 자리가 없어 무대 위에 의자를 놓고 보게 했지요." 외환위기 시기 사업을 도산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가 공연장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다시금 희망을 얻었다며 고백한 중년 남성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팬 중 하나다.

그는 올 하반기 데뷔 4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남은 목표는 뭘까. 인터뷰가 무르익을수록 딸을 대하듯 친근한 말투로 바뀐 그가 말했다. "노래쟁이가 관객에게 힘이 달리는 걸 들키면 재미없어지는 거야. 언제까지 노래할 거냐고도 묻지 마요. 내가 힘이 달리는 게 느껴지면 그때 내려올게. 동생(배우 양희경)에게도 당부했어. 내가 누구를 가르치려 들거나 안 되는 노래를 우겨서 하려고 하면 '그만해, 됐어! 그러다 들켜!"라고 말해 달라고."

[오신혜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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