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제3장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1. 첫날, 첫국밥

백일상 차리기와 백일떡 돌리기

백일은 아기가 태어난 날부터 꼭 백일이 되는 날이다. 근대 서양 의학이 들어오기 이전에는 아기가 백일까지 무사히 자라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웠다. 때문에 집안의 어른들이 남녀 구분 없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자라 백일을 맞이한 아기를 대견하게 여겨 이날을 축복하며, 앞으로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상을 차리고 잔치를 벌여 축하해 준 것이다. 삼칠일 행사는 산모와 아기를 위한 것이지만 백일은 순전히 아기만을 위한 축하 행사이다.136) 또 우리나라에서 백(百)이란 완전함을 뜻하는 숫자이며, ‘모든’, ‘다’의 의미를 지닌 축복의 숫자이다. 백설기(白雪糕), 흰밥(白飯), 백날(百日)까지 아기에게 입히는 흰 옷(白衣)이 상징하는 신성과 청정의 백(白)과 백날의 백(百)이 갖는 의미는 모두 무관하지 않다. 이제 백일을 맞는 아기는 세상살이를 위한 준비를 마친 것이다.

<수수팥경단>   
삼칠일상이나 백일상, 돌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떡이다. 수수팥떡의 붉은색이 아기의 액운을 막는다고 하여 꼭 올린다.

그래서 이날 아기를 위해서 백일상을 차리고 조촐한 잔치를 치른다. 음식은 풍성하게 차리면서도 잔치는 크게 떠벌이지 않고 소박하게 치르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야만 귀신의 시샘을 받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백일상에는 흰 밥, 미역국, 백설기(백편, 흰무리), 수수팥 경단, 송편을 올리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백설기>   
순진무구함을 잘 나타내는 흰색의 백설기이다. 멥쌀가루를 시루에 안쳐 쪄낸 떡으로 깨끗하고 신성한 음식이라는 뜻에서 어린이의 삼칠일·백일·첫돌에 많이 쓴다. 사찰에서 재를 올리거나 산신제·용왕제 등 토속적인 의례에도 자주 쓴다.

그 가운데에서 떡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데, 수수팥경단은 붉은색 떡으로 액운을 면하게 한다는 주술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수수팥떡, 수수망새기, 수수거멀제비(蜀黍瓊團)라고도 하는데, 찰수수를 물에 담가 떫은 맛을 빼고 곱게 가루로 만들어 비단으로 만든 체에 쳐서 익반죽하여 삶아 경단을 만든 후, 붉은 팥이나 거피팥(껍질을 제거한 팥)을 묻혀 만든 떡이다. 이 떡은 아이 백일에 만들어 먹을 뿐 아니라 돌부터 일곱 살이나 열 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해주면 좋다고 하여 지금도 생일 때면 흔히 만들어 먹인다. 옛말에 따르면 사람은 어려서부터 덕을 쌓아야(積德)하는데, 적덕은 붉은 떡(赤餠, 적떡)이라는 말과 비슷하여 이 떡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용기의 요리책에는 실제로는 곡식 중에 수수가 값이 싼 편이어서 자식에게 떡을 해주기 어려운 사람들이 수수팥경단을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137)

송편은 속을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이 있고, 지방에 따라 오색 송편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오행(五行), 오덕(五德), 오미(五味)와 같은 관념으로 만물의 조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백설기는 멥쌀가루를 고물이 없이 시루에 안쳐 하얗게 쪄낸 떡이다. 백일상에 올리는 백설기는 정결, 신성함을 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떡은 층층이 켜도 짓지 않고 고물도 없이 멥쌀가루를 그냥 시루에 붓고 익혀 먹기 때문에 간단히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백일 음식으로 선호되었던 이유이다. 시루에서 떼어 나눌 때는 칼로 자르지 않고 반드시 주걱으로 떼어서 나눈다. 산실(産室)의 것은 미역이든 떡이든 칼을 대지 않게 하는데, 자른다는 것을 아기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불길한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백설 기는 백 명의 사람이 나누어 먹어야 아기의 명이 길어진다고 하여 백일떡 나누기에 많이 섰다. 하지만 백설기뿐만 아니라 백일떡은 넉넉히 장만하여 여러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데, 이를 통하여 아기가 무병장수하고 많은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백일에 음식을 나누며 축하하는 풍습은 궁궐에도 있었는데, 1782년(정조 6) 12월에 원자(문효 세자)의 백일이 되자 정조가 승지, 규장각 각신, 약원의 세 제조를 불러 음식을 하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138) 조선 말 상궁들의 증언에 의하면 궁궐 아기씨(阿只氏)의 백일에는 외소주방(外燒廚房)에서 몇 가마분의 백설기를 만들어 궁 안에 있는 각 전(各殿)은 물론 궁 밖 종친들에게도 돌리며, 궁중에서 조촐한 축하연을 베풀었다고 한다.139) 백일떡을 받은 집에서는 받은 떡을 자기 집 그릇에 비우고 가져온 그릇을 돌려주는데, 이때 그릇을 물에 씻지 않고 돌려주어야만 아이에게 좋다고 믿었다. 그러나 씻어 주지 않는 대신 아기의 장수와 부귀를 기원하는 뜻으로 실이나 돈을 그릇에 담아 주었다. 실도 돈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쌀을 그릇에 담아주기도 한다. 이처럼 백일상에 차리는 음식은 백일을 맞은 아기에게 질병이나 액 같은 부정한 것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염원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다.

[필자] 윤성재
136)최남선(崔南善), 「백일」, 『조선 상식(朝鮮常識)』, 동명사, 1948.
137)이용기, 『조선 무쌍 신식 요리 제법』, 영창서관, 1943, 118쪽.
138)『정조실록』 권14, 정조 6년 12월 경진.
139)김용숙,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 일지사, 1987, 257쪽.